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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양복 입은 샐러리맨들이 삼삼오오 모여 동굴을 탐험하고 나무에 오르며 계곡을 건넌다. 유니폼처럼 획일적인 양복을 입은 채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남자들의 뒷모습이 광활한 자연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생경하게 두드러진다. 인물의 복장과 그들이 서 있는 장소 사이의 괴리감은 이들이 원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사회 시스템으로부터의 일탈의 느낌을 배가시킨다. 이 같은 탈출과 모험의 장면은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어 봄직도 하지만, 숨 막히게 짜여진 조직사회의 시간표 속에서 이루어지기 가장 힘든 바램 중 하나일 것이다. <Process>라는 이 일련의 연작들에서 오상택은 보통 사람의 삶 속에서 잠재적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는 일탈의 욕구를 연극적인 상황으로 연출하여 사진으로 포착하였다. 이 작업들은 마치 꿈 속 장면들이 그렇듯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디에선가 본 듯도 한 특수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불가능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고 있는 소망과도 같이, 잃어버린 것 혹은 돌아가야 할 무엇인가에 대한 향수를 안겨주는 것이다. 작가 자신의 상황을 이입할 수 있는 실존 인물들을 대상으로 무대 세트가 아닌 실제 자연풍경을 포착하였다는 점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연결된 기묘한 시공간 여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브레인 팩토리의 전시에서 보여지는 근작 <Sports> 연작들은 <Process>와 달리 연극적 상황으로 연출된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들의 실제 운동경기 장면들을 포착한 것이다. 운동경기는 생존경쟁의 장이며 각자에게 주어진 레이스를 최선을 다해 끝까지 완수해야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삶의 과정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다. 오상택은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삶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의지를 투영한다. <Process>에서 양복군단이라는 보편적 아이콘이 상징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이입하여 그들의 모험길에 동참하고 있다면, <Sports>에서는 땀을 흘리며 전력투구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의 몸짓에 그가 견지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치열함을 싣고 있다.
오상택의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배경과 인물 간에 설정된 상관관계이다. <Process>에서 서류가방을 든 검은 양복의 남자들과 숲 속 계곡길이 상징하는 의미 간의 부조화와 의외성은 그 자체로 내러티브의 구성요소가 되어 일탈, 자유, 모험, 도전과 같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Sports> 연작에서도 역시 장소와 인물 간의 유기적 관계가 결정적이다. 오상택은 여기에서 두 개의 장면을 오버랩하여 하나의 상황으로 만들어낸다. 전경의 운동선수와 후경의 관중석은 각기 다른 포커스로 촬영된 두 개의 장면이 한 화면 위에 포토샵으로 조합된 것이다. 배경은 배경대로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각각의 공간 속에서 제 목적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장면이 한 화면 위에 놓여짐으로써 생겨나는 것은 두 사건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다. 후경의 정지된 스틸라이프가 주는 무심하고 객관적인 분위기는 전력투구하는 어린 선수들의 표정을 더욱 고독하고 치열하게 보이게 한다. 뛰고 있는 선수는 진공상태와 같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경기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 같다. 광막하고 텅 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사력을 다해 뛰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주어진 삶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오상택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익명이어도 무관할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대 속 주인공이면서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떠나는 모험은 흥미진진하고 짜릿한 것만은 아니다. 일상의 권태를 벗어나 마법의 한 순간처럼 빛나기도 하지만, 그 뒷모습과 어깨 위에는 ‘인생은 나그네 길’과 같은 오랜 유행가처럼 가슴 한 구석을 애잔하게 만드는 삶의 무게가 있다. 경기를 치루는 선수들도 온 국민이 주목하는 올림픽 스타들이 아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를 홀로 완수하고 있을 뿐이다. 오상택의 작업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내러티브의 힘을 갖는다. 그 이야기가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 역시 그리 거창하지도 않지만 버겁기도 한 각자의 무대를 책임질 인생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은주 / 독립 큐레이터,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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